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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선언 105주년… 독립선언서 다시 읽고 우리 민족의 갈길 찾자

“日은 잘못 깨닫고 개과천선하여 함께 평화롭게 사는 세상 만들자” 권고

뉴욕일보 | 기사입력 2024/03/22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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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선언 105주년… 독립선언서 다시 읽고 우리 민족의 갈길 찾자
“日은 잘못 깨닫고 개과천선하여 함께 평화롭게 사는 세상 만들자” 권고
 
뉴욕일보   기사입력  2024/03/22 [04:46]

  © 뉴욕일보

<이길주 교수>

 

  © 뉴욕일보

 

그러면 기미년 독립선언서의 투쟁정신(fighting spirit)은 무엇인가?

▲ 독립선언서가 제시하는 비전은 명확하다. “스스로를 채찍질 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결코 오랜 원한과 한순간의 감정으로 샘이 나서 남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대한독립만세”란 외침은 일차적으로 일본 지배자가 물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만세 (萬歲)”에 담겨있는 민족의 독립과 자주는 지속과 연속성을 요구 한다. 이것은 나를 지킬 때 가능하다. 독립선언서의 표현을 빌리면, “민족의 존엄”에 상처를 주어서도 또 상처를 받아서도 안 된다.

 

- 민족의 존엄이란 과연 무엇 인가? 민족의 자부심 또는 당당함 을 뜻하는 것인가?

▲ 꼭 필요한 질문이다. 존엄 (Dignity)은 자부심(Pride)과 다르다. 자부심은 내가 나를 우수 (superior) 하다고 믿게 하는 힘이다. 내가 뛰어나다고 느끼려면 증표가 있어야 한다. 학벌, 수입, 혈통, 심지어 외모 등이 자부심을 갖게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풀면, 식민지가 강한 나라 민족에게 우월성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일본도 그 극성을 부린 것이다. 반면 존엄은 이렇게 비교할 수 있다. 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지 않아도, 찢기고, 퇴색하고 구겨진 군복에서 노병의 존엄을 본다. 존엄은 내면에 서지만 겸손과 감사를 내포하고 있다 (Dignity is internal and contains humility and gratitude)란 표현이 좋다. 겸손과 감사는 성숙한 모습이다. 한때 한국민은 “잘 살아 보자,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를 시도 때도 없이 외쳤다. 한국은 지금 그 구호대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자부심을 가질 근거가 있다. 그런데 이 부국이 존엄함을 얻으려면 국가 공동체가 겸손과 감사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부를 성숙하게 다루어야 한다. 사회가 물질 만능이나 개인주의로 치달으면 존엄성을 말할 수는 없다.

 

- 독립선언서는 비록 식민지배를 받고 있지만 민족의 성숙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으로 들린다.

▲독립선언서 그 어디에도 일본사람 몰아내자란 구호는 없다. 물리적 투쟁을 부추키지 않는다. 타민족을 지배하고 착취함으로 나를 강하게 하겠다는 의식과 국가 어젠다가 존재하는 한 일본이 밀려 나가지도 않겠지만, 나간다 해도 다시 온다. 독립선언서는 이런 침략사의 근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일본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이고 파괴적 역사의 길로 들어선 민족이다. 일본의 잘못된 사상과 행동을 독립선언서는 간과하지 않는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온갖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인 대하듯 하며 우리의 오랜 사회와 민족의 훌륭한 심성을 무시”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2천만 조선인이 ’울분과 원한‘에 사무쳤다. 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일본이 회개하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민족적 사명이다. 일본, 조선, 동양, 나아가 인류를 위해서이다. “우리는 단지, 낡은 생각과 낡은 세력에 사로잡힌 일본 정치인들이 공명심으로 희생시킨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려는 것” 이라 했다. 기미년 독립선언의 궁극적 목표는 “올바른 세상이다.” 이 세상은 일본이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가능하다. 세계 제2차대전을 보면 이 외침은 예언적이었다.

 

-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 일 수도 있겠다. 독립은 왜 쟁취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독립선언서의 핵심을 짚는 명제다. 왜 독립인가? 독립이 가져올 열매가 물론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쌓인 억울함을 떨쳐 내고 지금의 고통을 벗어던지려면, 앞으로 닥쳐올 위협을 없애 버리고 억눌린 민족의 양심과 사라진 국가 정의를 다시 일으키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인격을 발달시키고 우리 가여운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유산 대신 완전한 행복을 주려면, 우리 에게 가장 급한 일은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뚜렷한 독립 없이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하지만 더 귀한 열매가 있다. 독창이다. 독립(獨立)과 독창(獨創)은 같은 ’독(獨)‘자다. ‘독창적 (獨創的)’ 이란 형용사의 영어 뜻은 ‘creative, original, inventive, ingenious’이다. 남에게 묶여 있으면 원래 내 속에 존재했던 창의, 창조적 에너지는 소멸한다. “우리는 원래부터 지닌 자유권을 지켜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원래부터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민족의 독립과 민족의 독창성을 하나로 보았다. 다른 독립선언에서 찾기 어렵다.

 

  © 뉴욕일보

 

- 어느 정도 식민 통치자를 미워하고 증오해야 독립 투쟁이 가능한 것 아닌가?

▲기미년 독립선언과 다른 독립선언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자주 선언의 원조 격인 1776년 미국의 ‘Declaration of Independence’는 검사의 기소장과 선전포고를 합친 형태다. 영국이 왜 나쁜 나라인가를 설명하는 데 27개 구체적 사례를 언급한다. 그렇게 나쁜 식민 통치이니 모든 것을 던져 싸우겠다는 선언이다. 결론은 기도문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결기가 장엄하다. “And for the support of this Declaration, with a firm reliance on the protection of divine Providence, we mutually pledge to each other our Lives, our Fortunes and our sacred Honor.” 독립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간구하면서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다 걸겠다고 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여기 나온다.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고 죽기 까지 싸우겠으니 하나님이 지켜달라는 기도이며 공동체적 결단이다. 기미년 독립선언에도 장엄한 표현이 있다. “오늘, 우리 이천만 조선인은 저마다 가슴에 칼을 품었다. (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 가 人(인)마다 方寸(방촌)의 刃 (인)을 懷(회)하고)”이다. 여기서 칼은 사람을 해치는 무기가 아니 다. 내 안에서 나를 새롭게 하는 도구이다. 그다음 문장에서 마음 한 가운데 칼을 품는다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모든 인류 와 시대의 양심은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방패가 되어 우리를 지켜 주고 있다.” 즉 양심과 정의가 무기이다. 이것이 나를 세우고 지켜 준다.

 

- 한 민족이 독립을 통해 독창성을 되살린다면, 그 결실은 무엇인가? 독립선언서의 표현대로 민족의 독창성이 활짝 꽃 피우면 그 찬란한 세상의 모습은 무엇인가?

▲ 독립선언에 “새로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란 표현이 들어있다. 독립은 우리 민족 집단 하나가 자유롭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독립이 되어야, 우리가 우리 고유의 독창적 모습으로 존재할 때 더 좋 은 인류 공동체가 되도록 힘을 더 할 수 있나? 인류의 식탁에 내 음식을 보태야 식탁이 풍성할 것 아닌가? 따라서, 우리 민족의 독립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대해 빼앗고, 억누르고, 살상을 일삼는 시대를 종식하고 새로운 인류 역사의 도래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세계사 적 사건이다. 폭력과 억압의 시대는 가고도 의의 시대가 오니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지켜 주니”라 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란 뜻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 주체적 으로 섰으니, “세계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 우리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고 했다.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찾는 일 이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의 독립선언은 세계 공동체적 사건이다.

 

- 앞에 독립선언서의 깊은 영성 (靈性)을 언급했다. 그 뜻은?

기미년 독립선언서에 그려진 우리 민족의 모습은 복음서에 나오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이다. 식민 압제로 인해 민족의 양심은 억눌렸고, 국가의 정의는 사라졌다. 이를 회복해야 한다. 독립을 쟁취해 나라들이 서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여는 것” 이 독립의 목적이다. 이날이 오면 복음서의 약속 대로 우리 민족은 정의에 배부를 것이다.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 만이 줄 수 있는 충만함이다. 독립선언서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예수의 구원사를 생각한다. 만약 예수가 유대사회의 종교 권력, 로마의 통치 권력에 항거하 기 위해 이 땅에 존재했다면 그의 삶은 혁명사는 될지언정 구원사는 아니다. 구원사의 완성은 “새 하늘 새 땅이다.” 독립선언서에 “부활”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이 개념이 독립선언서에 담겨있다. 아주 시적인 표현 이다.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옛 것이 소멸되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시대가”왔다”고 했다. 독립된 세상, 즉 새 하늘 새 땅 에는 부활한 생명이 살아 꿈틀댄다.

<2월 29일자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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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3/22 [04:46]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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