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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령의 사랑시 칼람

뉴욕일보 편집부 | 기사입력 2012/05/29 [21:17]
뉴스포커스 > 이혜령 시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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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령의 사랑시 칼람
 
뉴욕일보 편집부   기사입력  2012/05/29 [21:17]

▲     © 뉴욕일보 편집부
 
로댕의 연인 카미유 끌로텔의 시(詩)


이제 나는 몸을 빼려 한다 사랑으로부터, 세상의 비웃음으로부터 

사랑하는 폴, 일찌기 너를 따라 중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 너무 깊었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 

폴, 나를 재촉하는 인어의 금빛 플루트 소리 들리는가! 저 황홀한 빛, 

꿈 하나를 깨는 데 일생이 걸렸구나 지지 않는 햇살 같은 바다의 쪽빛 명성을 위해서 

나는 죽어서도 더 불행해야 한다 

로즈는 내 삶의 터전이오 그..녀..를..외..면..할..수..는.. 

로댕의 목소리는 나를 할퀴며 자라는 겁 없는 손톱이었다 

밤마다 깨어지며 덮치는 조각상들, 초인종은 울리지 않고 

작업실 거미들은 탄성 좋은 타액으로 나를 엮었다 그의 등을 향한 날들의 혼미한 정신 

찢긴 팔다리 타고 올라 나의 뇌수를 뽑아내던 잔혹한 그리움의 대롱 

맨발의 거리를 헤매도 바다는 끝내 내 발바닥 적셔주지 않았다 

아, 일몰에 젖은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찢어발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폴 네가 맞은편에 서 있기도 했던가 

배에 올라야 할 시간이다, 사랑하는 폴 파도 위 바람처럼 가벼워지는구나 

너무 무거웠던 짐,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지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사랑, 이제야 고모는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 있었다, 라고 말 할 조카들의 병아리 같은 입  훗날이 미안할 뿐이다

 

 나는 불운한 집안 내력을 가졌거나 불행을 껴안고 고독 속에 살다간 비극적인 여류예술가들에게 천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들에게 강한 동정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느껴, 그녀들의 세계에 마음을 담그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특별한 아픔을 즐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역사 속에 새겨진 그녀들의 불행한 삶을 더듬으며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탄식과 내면에서 폭발할 듯 솟구치는 불온한 기운에 나만의 에너지가 창출되는 것을 감지하며 무언의 동류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까미유 끌로텔은 프랑스의 유명 조각가인 로댕의 연인이자 스스로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비운의 조각가였다. 까미유가 열아홉, 로댕이 마흔 셋이었던 1883년 그 둘은 무려 24살의 나이 차가 나는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까미유의 내면에 숨겨진 불꽃같은 열정을 한 눈에 알아챘던 당대 유명 조각가 로댕은 아름답고 열정적인 까미유에게 매료되어 그녀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까미유에게 있어 그 사랑은 '내 꿈은 모두 악몽' 이라고 말할 만큼 비극을 암시하는 슬픈 사랑의 서곡일 뿐. 둘은 10년 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로댕에게는 이미 20여년을 함께 한 로즈라는 여인이 있었고, 로댕은 끌로델을 사랑했지만 늘 자신의 곁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했던 로즈를 버리지는 못했다.
 아름답고 예술적 영감 또한 풍부했던 천재적 예술의 동반자는 로댕에게 불안감과 부담을 주는 존재로 전락했고, 미모의 여류 조각가의 사생활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예술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늙은 조각가 또한 그녀를 의식하며 점점 압박해왔다. 결국 끌로텔은 '로댕이 나의 재능을 두려워 해 날 죽이려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혔고 전시회 또한 실패하게 된다. 결국 비운의 클로델은 정신적인 충격을 이기지 못하였다. 또한 의지하고 지내던 동생 폴마저 중국으로 떠나버리자 그리움과 외로움에 함몰되어 폐인의 삶을 살게 된다.
 이 시적이고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여류조각가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홀로 지내다 쓸쓸히 숨을 거두고야 만다. 과연 사랑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시대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잠시 즐기고 불태우는 쾌락마저 '사랑'이라 인식되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한 평생을 걸만큼 처절하고 애달픈 비극이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물질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내보여줬던 지고지순하면서도 고귀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듯하여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끌로텔이 이 시대를 다시 산다면 그녀는 과연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는 가정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니 통탄할 수밖에! 그녀의 운명은 그녀의 시처럼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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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5/29 [21:17]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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