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이혜령 시인 시 칼럼 - 초혼

뉴욕일보 편집부 | 기사입력 2012/05/04 [19:45]
뉴스포커스 > 이혜령 시인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혜령 시인 시 칼럼 - 초혼
 
뉴욕일보 편집부   기사입력  2012/05/04 [19:45]

▲     © 뉴욕일보 편집부


초혼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위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이 어리고 철없는 처자는 가끔 무모한 생각을 한다. 이별은 사랑의 끝이 아닌 어쩌면 아픈 사랑의 완성일지도 모른다는. 그렇다면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에는 그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야만 하는 것일까. 허무한 사랑, 어지러운 사랑, 뜨거운 사랑, 그리고 달콤 쌉싸름한 사랑과 고통스런 사랑에서 급기야 미친 사랑까지. 이토록 신비롭고 경이로운 우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색깔이나 모양, 농도가 모두 같을 리는 만무하지만 아마도 가장 서러운 사랑은 사별이 불러온 처절한 이별의 고통이 담긴 애가 끓는 사랑일 것이다.

 

오매불망 꿈에도 그리던 나만의 당신. 손에 쥐면 사라질세라 오래 바라보면 닳아 없어질세라 너무도 소중하게 여기던 사랑하는 내 당신. 그런 당신이 불귀의 객이 되어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니!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고 숨결조차 그려볼 수 없으며 손끝으로 더듬을 수 없는 이를 가슴에 담고 살고 있는 이의 고통스런 심정을 과연 그 누가 헤아려 줄 수 있으며, 그 아픔을 과연 누가 어루만지고 보듬어 줄 수 있단 말인가!

 

유교 예법에는 사람이 죽었을 때 행하는 복(復)이라는 의식이 있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입던 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복'을 세 번 외치는 의식이다. '복'은 돌아오라는 뜻으로, 죽은 자의 혼령을 불러들이고자 하는 초혼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차마 죽은 이를 떠날 보낼 수 없는 사람의 비통한 마음이 잘 표현된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위의 '초혼'에서처럼 시어의 반복은 시에 생명력 있는 리듬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시의 분위기를 격정으로 이끌어 간다.

 

하지만 '하늘과 땅 사이는 상상할 수 없이 넓기에 초혼가는 끝끝내 하늘에 닿지 못하고 만다. 이미 결별한 영혼과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도록 영원한 사랑과 동경을 보내고 있을 뿐. 부르다가, 부르다가, 지치고 지쳐, 끝내 망부석 되어, 아니 망혼석(望魂石)이 되어 서게 됐을 때에나 그 초혼제가 끝이 날지도 모르리! 이 시는, 그리운 애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행위로 우리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고독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가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동경과 염원을 표현한다.

 

생전의 그에게 왜 그토록 표현하지 못하고 입에만 담아두었던 사랑, 사랑이란 말인가! 심중에 남아 있는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고 불러도 주인이 없어진 그 서러운 이름 목 놓아 부르다가 내가 죽을 것 같은 이름. 망자(亡者)가 된 그를 떠올리며 시를 쓴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추억만을 남겨놓고 지상을 떠난 자를 떠올리며 초혼을 낭송하는 이의 낯빛을 보노라면 한 맺힌 그리움이 저며 올라 듣고 보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판다. 어쩌면 영원한 이별은 뼈아픈 사랑의 처절한 완성일지니.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2/05/04 [19:45]   ⓒ 뉴욕일보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온라인 광고 순환 예제
이동
메인사진
즉각 호전 반응, 근본 건강 개선 ‘청류담’, 강재구 원장을 만나다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뉴스포커스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