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나비의 꿈
이혜령
너의 몸에 알을 낳고 싶었다.
피안(彼岸 )의 거처에 몸을 뉘이고 있는 창백한 너에게
사락사락 날아 들어가.
이미 자웅이체(雌雄異體)인 우리였기에
상상 속에서라도 암 수 한몸이 되어
동상이몽(同牀異夢)의 옹벽을
눈부시게 찬란한
산란(産卵)의 힘으로 깨고 싶었단 말이다.
파란 나비의 날개짓은 슬픔의 응축(凝縮)이 번져나가는 것.
이 서러움과 짓끓는 욕정을 파란 핏물로 뚝뚝 흘려가며
오늘 밤만이라도 방사(房事)의 오르가즘을 맛보리라
남자인 너의 푸른 자궁 안에서.
여자인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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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5억년 이상이나 되는 방대한 지구의 나이. 이에 비하면 하찮고도 짧을 백년도 채 안 되는 한 인간의 생애. 그나마 이 삶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감히 입에 담고 말할 수조차 없이 갇히고 억압되어 산 날이 너무도 많았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 구경도 마음껏 할 수 없었고, 외출도 의지대로 할 수 없었으니 하물며 이름만 불러도 두근두근 가슴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사랑인들 제 열의대로 마음껏 해보았겠는가.
여자란 명찰을 다는 순간 인생 자체가 혹독하게 얼어붙었던 얼마 지나지 않은 숨 막히는 과거가 존재했다. 물론 나보다야 우리 어머님들 세대가 더욱 그러했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으리. 해서 깊은 땅에 묻어서 오래 묵혀두었던 빛바랜 항아리를 꺼내는 심정으로, 한양동이만치의 피를 절절 끓여대던 어느 날 밤, 이 시 ‘파란 나비의 꿈’을 막힘없이 써내려가며 억눌린 여성들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도대체 이 삶에서 정해진 운명들은 어찌 그리도 많고 자로 잰 듯 재단해 놓은 사고들은 어찌나 무수한지. 그런 것들이 한이 되어 숨이 막혀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여성들의 슬픈 청춘과 시멘트를 발라 밀봉해버린 벽처럼 고착화된 관념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단단하고 고정되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굳은 사고 위에 불타는 돌멩이를 집어 던져 단박에 그 억지 틀을 '쨍그랑'하고 깨뜨려버리고 싶었다.
남자 위에 서서 군림하는 여자를 노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남자를 능가하는 여장부 같은 여자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태생적 의지대로 본능과 욕망을 노래하는 순수한 인간이자 원초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이자 예술혼이고 싶었다. 여자에게도 남자 이상의 원초적인 욕구가 살아서 꿈틀대고 있으며 그 것을 드러내고 과감하게 표현한다고 해서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는 자연스러운 발로일 뿐이다. 나는 열정이 사라진 생명과 사랑이 더욱 서글프게 느껴질 뿐이다. 건강하고 적극적인 여성이 훨씬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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