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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와 ‘J에게’ 부른 혼성듀엣 임성균씨 84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 차지
스타가수 꿈 접고 ‘동포들에 음악으로 메아리칠 터’
 
뉴욕일보 양호선 기사입력  2011/05/13 [11:12]
▲ 데뷔 초기 언론 인터뷰 때 이선희와 찍은 사진.                                                              © 뉴욕일보
▲ 임성균씨가 최근 음악에 뜻 있는 동포 음악인들을 모아 보컬그룹 ‘4막5장’을 창단, 콘서트 공연 준비를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 뉴욕일보

이선희와 혼성듀엣으로 ‘J에게’를 불러 1984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임성균(48·사진)씨.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대중들로부터 잊혀진 그가 롱아일랜드 낫소카운티 알버슨(Albertson)에서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제2의 음악인생 ‘4막5장’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임씨의 음악인생에 있어서 출발은 더없이 화려했다. 인천전문대(현 인천대학교) 기계공학과 1학년 재학 중 음악서클 ‘4막5장’을 창단했다. 이듬해 학교 축제에서 가창력이 돋보이는 이선희(당시 인천전문대 환경관리과 1년)를 서클 멤버로 영입했다. 그가 이선희와 호흡을 맞춘 건 불과 3개월 남짓. 그는 “이선희는 ‘J에게’를 당시 무명 작곡가 이세건씨로부터 이미 받아 둔 상태였어요”라고 회고한 뒤 “MBC 강변가요제에 그룹사운드와 혼성듀엣 두 부문에 걸쳐 신청해 놓은 거예요. 그런데 그룹사운드는 예선에서 탈락하고 혼성듀엣만 통과한 겁니다.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보통 예선에서 몇 소절만 부르면 기라성 같은 심사위원들은 통과 여부만을 곧바로 결정하는데 ‘J에게’ 1절을 끝까지 다 듣는 겁니다”라고 되뇌었다. 문화체육관에서 2차 예선까지 거뜬히 통과한 뒤 총 10팀이 본선에 올라 청평 남이섬에서 경연을 벌였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대중음악계를 주름잡던 내로라하는 이들이었다. 결과는 이선희와 함께 대상 수상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차지했다.
MBC 대학가요제는 1979년 경기도 가평군 청평유원지에서 처음 개최돼 그 시대 젊은이들의 정서를 반영하며 신인가수들의 중요한 등용문이었다. 역대 강변가요제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홍삼트리오, 사랑의 하모니, 손현희, 마음과 마음, 유미리, 이상은, 장윤정 등이다. 이들은 지금도 쟁쟁한 실력을 바탕으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스타가수들이다. ‘자고나니 유명인사가 되어 있더라’더니 그가 딱 그랬다. 이후 방송연예 활동으로 눈코뜰새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군대가 그만 음악인생의 발목을 잡았다. 대한의 남아로서 어차피 가야 할 군대. 이선희에게 솔로를 권유했다. 87년 제대 후 기획사 소속으로 솔로로 가수활동에 전념했다. 89년 솔로 앨범도 내놓았다. 소속 연예기획사의 뇌물 스캔들이 그의 음악인생에 있어서 다시 한번 발목을 붙잡았다. 무대에 오르지 못하면 가수랄 수 없을 터. ‘가수는 내 길이 아닌가보다’ 싶었다. 그저 음악이 좋아 미사리 카페에서 값싼(?) 노래를 부르던 ‘삼류가수’들의 스산한 삶을 보며 ‘어쩌면 나의 미래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의 꿈을 접고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 진영·은영이 커가다 보니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해 미국에 이민을 왔다. 언저리에는 남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픈 도전의식도 한몫 거들었다. 임성균씨는 흔한 말로 ‘닭공장파’이다. 수수료 3만 달러를 지급하고 2005년 2월 가족과 함께 와 메릴랜드의 닭공장에 취업했다. 닭공장에서의 1년이 마치 군대에 다시 온 것 같았다는 그. 컨베이어 벨트에 쉼 없이 밀려드는 닭을 요리하기에 알맞게 분리하는 작업이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날개를 자르고, 다리를 자르고, 텐더(tender, 안심)를 분리하고, 닭가슴살의 지방을 제거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임금은 한달에 고작 1천달러. 4인 가족이 먹고 살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공장에서는 근로자들의 정신분열을 예방하기 위해 2시간마다 작업의 종류를 바꿨다. 일하는 이들의 인종분포는 한인이 10%, 히스패닉이 90%를 차지했다. 점심시간 30분, 휴식은 오전과 오후 10분씩이었다. 1년을 일했더니 67㎏이던 몸무게가 51㎏으로 축났다. 1년 동안 무려 16㎏이나 감량(?)하는 호된 이민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의무계약기간 1년을 마치는 마지막 날 마지막 닭이 컨베이어 벨트에 오는 순간을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의무기간 1년을 마친 뒤 지금까지 헤어 관련 제품을 취급하는 홀세일 회사 ‘뉴 프로 그룹’에서 일하고 있다. 직책은 영업이사. 미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등지를 종횡무진하며 영업망을 구축ㆍ확장하고, 15명의 직원을 관리하는 게 그의 업무다.
이선희는 1984년 임성균씨와 MBC 강변가요제 대상을 공동수상한 이후 연이어 엄청난 히트곡을 쏟아내며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가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당시 혼성듀엣으로 나선 그는 대중들로부터 그렇게 잊혀졌다. 바쁜 방송 스케줄과 언론 인터뷰 등 화려했던 연예계 생활. 미련은 없을까. “전들 왜 미련이 없겠어요.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이라면 현재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죠”라고 말하는 임씨. 그가 최근 음악인생 ‘4막5장’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예전에 활동했던 보컬그룹 ‘4막5장’이란 이름으로 창단해 매주 한 차례씩 그룹 멤버들과 모여 연습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음악을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언젠가 밴드를 다시 하고 싶었어요. 고단한 이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으로 다가가 촉촉이 적셔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노래와 퍼스트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에 두루 능한 그가 콘서트와 위문공연 등을 통해 우리 곁에 다가올 날이 멀지 않았다.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누님 같은 모습으로 그만의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고가는 저녁 문득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요
그대 창가에서 떠도는 바람의 향기
나의 마음은 시가 흐르는 강물 같은 것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나는 커다랗게 사랑을 안아요
살아간다는 기쁨~ 너무나 사랑한다는 이 화려한 행복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때때로 모두가 등을 돌려도
푸른 언덕 저 너머로~ 저리로 다가가는 내 여정의 그림
사랑해요 그대를 사랑해요 그대를 사랑해요 그대를
사랑해요 그대를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임성균씨의 1집 앨범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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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5/13 [11:12]  최종편집: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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