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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5월에 간 김재규장군을 생각한다
 
뉴욕일보 기사입력  2017/04/12 [05:35]
▲     ⓒ 뉴욕일보


5월24일을 기억하십니까? 1980년 5월24일 오전 7시 서울형무 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김재규는 묶인채 걸어서 서울구치 소 사형실로 들어갔다. 죽음의 의자에 앉자 유언을 물었다. “하고 싶은 남길 말이 있으면 하시 지요” 전날 장문의 유언을 남겼는데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인가? 또 말은 산자들 이 속이고 자랑하려고 하는 짓거리들 인데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 서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선언했다. 부처님은 죽으면서 조용히 웃기만 했다. 김재규는 말이 없었다. 그러자 봉지처럼 만든 하얀 보자기 가 얼굴위로 덮여 씌워졌다. 머리 위로 올가미가 달린 밧줄이 소리 없이 내려 왔다. 밧줄이 목에 걸리자 의자 밑이 갈 라졌다. 덜커덩! 소리와 함께 김재규의 몸은 아래 층으로 떨어지면서 대롱대 롱 매달렸다. 목이 졸려 숨이 막혀 죽어가면서 김 재규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 도시합 하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김 재규는 검은 띠 유도선수였다. 시합 때 상대를 넘어뜨리고 목조르기를 시도한 다. 상대가 숨이 막혀 질식 기절하기 직 전 심판이 한판승을 선언한다. 통쾌한 순간이다. 이순간의 영광을 위하여 피 나는 훈련을 한다. 그런데 유도의 묘미는 목조르기를 당할 때이다. 상대선수가 위에서 조르 거나 뒤에서 목을 조른다. 발버둥 치다 가 기진맥진 축 늘어저 숨이 막히면서 질식 순간이 온다. 생명이 끊어지기 직 전이다. 그런데 그 순간 오르가즘 비슷 한 희열이 오면서 아늑하고 조용한 평 안이 찾아온다. (아!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죽음 같은 평화라고 할까? 어느 유 도선수는 목조르기 당할 때의 맛을 잊 지 못하여 유도를 한다고 고백했다. 김 재규는 죽어가면서 목조르기를 체험하 고 있었다. (내가 전두환에게 한판승으로 목조 르기를 당하여 죽는구나. 그러나 다음 순간 환생으로 영생할 터이니 내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랴!) 누가 봐도 김재규는 마지막까지 의 연했다. 이어서 박선호, 이기주, 유성옥, 김

태원이 1시간 간격으로 잇따라 처형됐 다. 착하고 정의로웠던 부하들은 죽으 면서도 장부답게 김재규를 따라갔다. 박흥주는 현역 군인이기에 항소가 안 됐다. 그래서 두 달 앞서 3월6일 총살 형을 받았다. “김재규씨의 시신을 가져가시오. 빨 리 찾아가지 않으면 교도소당국이 화 장해 버리겠습니다. 장례는 내일 안으 로 끝내야 합니다.” 동생 김항규가 형의 시신을 빼내왔 다. 다음날 5월25일 경기도 광주군 보 포면 능골리 삼성공원묘지에 김재규를 묻었다. 박흥주는 경기도 포천의 천주 교묘지에 묻혔다. 박선호는 경기도 고 양의 공원묘지에, 이기주는 경기도 양 주군 구내면 공원묘지에 묻혔다. 유성 옥과 김태원은 화장했다. 원래는 김재 규의 유언대로 경북 선산의 선영에 6인 묘를 만들고져 했으나 당국이 막았다. 죽어 혼백으로 합쳐서 복수할까 두려 웠던 모양이다. 1989년 2월24일 전남 광주의 송죽 회는 경기도 광주로 올라와 ‘의사 김재 규장군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에 새 겨진 추모시.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광풍 몰아 덮칠 때에 홀로 한줄기 정기를 뿜어 어두운 천지를 밝혔건만 눈부신 저 햇살은 다시 맞지 못하고 슬퍼라, 만사람 가슴을 찢는구나 아! 화천의 그 기상 칠색 무지개 되 어 이 땅위에 길이 이어지리” 1980. 1. 20 송죽회

위의 글은 이계선이 쓴 김재규 복권 소설 <신부님, 김재규는 악인인가요?> 의 끝부분 입니다. 이 소설을 노창현의 뉴스로가 연재해주고 있습니다. 컴퓨 터 Google에 ‘뉴스로’ 를 쓰고 누르면 반갑게 튀어나옵니다. 촛불탄핵이 일어나는 바람에 신으 로 떠받들던 ‘박정희신화’가 벗겨져 버렸습니다. 조카사위 김종필은 국모 육영수여사가 투기심 많은 중전마마라 고 폭로했습니다. 박근혜가 탄핵 당했 기 때문이지요. 

4년 전 <신부님, 김재규는 악인인가 요>을 썼지만 출판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와대가 무서워 출판사들이 기피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말 할 수 있습니다. 오는 4월27일 뉴욕 맨해튼에서 소설로 쓴 ‘김재규 이야기 모임’을 갖습니다. 공명(정광채)이 이끄는 흥사단 강좌 시 간입니다. 이민사회의 선구자 도산 안 창호 선생이 나성에서 시작한 흥사단 의 ‘홍익인간’은 이민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찾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일시: 4월27일 오후 6시30분 △ 장소: 16 W. 32 St #803 NY NY 10001 △ 전철로 오는 방법: B D F M N Q R W를 타고 맨해튼 34 St에서 내리세 요. △ 의제: 5월에 간 김재규장군을 생 각한다(“신부님 김재규는 악인인가 요?” ) △ 등촌 이계선 목사 연락처: (646)549-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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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2 [05:35]  최종편집: ⓒ 뉴욕일보
 
김제규 선생님 koreanyi 17/09/12 [06:13] 수정 삭제
  김선생님은 6.25 사변전에 내가 다니던 대구대륜중학교 교련선생님이셨다. 군장교(중위)로 우리학교에 군사교육교관으로 오셨다가 결국 체련선생으로남으셨고 전쟁이니자 곧 군에 복귀하셨다. 나의기억으로는 그분은 경강도 영주가 고향이었으나 해방되어 곧 군에자원입대하셨고 우리학교로 교련교사가되셨다. 강직하시고 말씀한마디 한마디가 애국과 애족의신념이 충만하겼다고 기억된다 어쩌다가 국난에 휩쓸린셨는지는 알수없으나 난 그분을 잊이못하고 명복을 빌어드리고싶다. 선생임
앞에서 이야기 계속 koreany 17/09/12 [06:27] 수정 삭제
  아직도 박정희대통령사진 집안에 모시는분들 있으신가요 만약 장면정권이 미국의도움으로 전쟁에서 패허된 나라를복구하였더라면 지금 한국은 세계 일등국가되었을것이다 보라 "외노무들" 그들은 원자폭탄을 맞았으면서도 미국의도움으로 세계 2위경제대국이되었다. 우리는 박정의정권이 장면정부를 뒤집는바람에 아직도 중진국을 못벗어나고있다.
새마을운동에 대하여 koreany 17/09/14 [13:28] 수정 삭제
  새마을 운동은 미개했던 한국농촌을 현대화하는데 결정적도움을줬다 그러나 새마을운동 박정희대통령이 한게아니라 장면정권때 미국이 한국농촌을 돕기위하여 1954년 전국에 "농촌지도소"라는 농민단체를만들고 4H 그룹을 보급한것이다 박정희대통령은 `1972년 포항종합제철 준공식에 참여하였다가 영일군수로부터 농촌개발운동인 4H 이야기를듣고 방문한게 처음이었다. 새마을운동=박정희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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