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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일보 시론] ‘인권’이 최고 가치이던 정치인 ‘애니 팔레오마바에가’
 
뉴욕일보 기사입력  2017/02/25 [00:00]
▲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

2009년 1월19일 오후였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취임식을 하루 앞둔 워싱턴DC는 말 그자체로 대혼잡이었다. 취임식에 직접 참가하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시민들로 시내는 인산인해였다. 

 

취임식장 입장 티켓은 보통 연방의원실에서 배포한다. 취임식 입장 티켓을 받으려고 의사당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하려고 서울서도 손님이 많이 왔다. 주미한국대사관은 한국 고위층들의 취임식 티켓을 구하고 또 미국 의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느라 바빴다. 

 

◆ 최고가치는 ‘인권’

필자는 수년 동안 절친으로 사귀고 있는 아메리카 사모아 지역구 출신인 ‘애니 팔레오마바에가’(하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 위원장) 의원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애니’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서 한국의 국회의원이 들어왔다. 여당 전국구 출신의 여성의원이었다. 영어소통이 비교적 제대로 되는 외교·안보 전문가(대학교수 출신)란다. 애니 위원장과 이 여성의원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여성정치인에게 ‘애니’ 위원장은 “미연방하원은 3년 전에 일본군강제위안부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한국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잘 보살펴 드려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여성의원의 대답이 엉뚱했다. “위안부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고맙지만 그보다 한국에 더 앞선 문제는 ‘안보’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북문제를 놓고서 일본과 긴밀하게 협력할 때이니 전략적으로 결의안 채택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대답을 용감하게 했다. 

 

길고 긴 설명과 함께 이 말을 듣고 있던 ‘애니’ 위원장은 얼굴을 불그럭프르럭 하다가 필자를 쳐다 보면서 “이 여성이 한국의 정치인이 맞는가?”라고 하면서 “정치인에게 인권문제를 우선하는 아젠다가 어디 있는가? 위안부 문제의 시기가 어디에 있는가.? 얼마나 늦었는가? 도대체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보았는가? 정치인들이 잘못해서 인생을 망친 할머니들이 겨우 살아있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필자에게 그 여성의원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그 여성의원을 데리고 나와서 돌려 보냈다. 필자는 지금도 이 장면을 잊지 못한다. 내가 알고 지낸 정치인 중에 가장 훌륭한 진심의 정치인을 꼽으라고 하면 애니 팔레오마바에가 의원을 언급하는 데에 필자는 결코 주저하지 앉는다. 

 

◆ ‘위안부’ 한 풀기에 앞장

1988년 당선되어 2014년 12월말에 의회를 떠난 12선(24년)의 미 연방하원의원 ‘애니 팔레오마바에가(Eni Faleomavaega)’의원이 지난 2월22일 저녁 유타주에 있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1943년생이니 향년 74세다. 지역구는 미국 자치령인 아메리카 사모아다. 

 

그는 지병인 악성 류마치스로 2014년에 쓰러졌다. 그해 선거에서 낙선했다. 24년 동안 줄곧 하원외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에 소속해서 일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내내 아태소위원장직을 지켰다. 아마도 지난 20여년 동안 워싱턴을 방문했던 한국의 국회의원 치고 이 애니 위원장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필자에게는 2007년 일본군강제위안부 결의안(HR-121)을 추진할 때에 ‘마이크 혼다’ 연방하원의원의 소개로 인사를 한 것이 첫 인연이다.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모셔다가 청문회를 개최하려는 계획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결의안은 외교위의 사안이고 혼다 의원은 예산위원회 소속이었기에 애니위원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애니 위원장이 주도하는 청문회에서 혼다의원은 결의안을 제안하고 그 정당함을 설명하는 일을 맡았고, 필자는 이 청문회에 2차대전 당시 네델란드령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당했던 현재 호주 거주 얀 뤼프 오헤르너 할머니와 한국에서 위안부피해자 김군자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를 모셔오는 일을 맡았다. 

 

2007년 2월15일이었다. 드디어 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 청문회가 열렸다. 의회미디어 뿐만 아니라 미 주류언론도 큰 관심을 보이며 취재에 나선 성공적인 청문회였다. 청문회가 끝나고 할머니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애니위원장은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과 ‘평생의형제(오누이)’를 맺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애니 위원장은 이용수 할머니를 “누님(Sister)”이라고 블렀다. 

 

2009년 필자는 애니 위원장을 모시고 일주일 간 한국을 방문했다. 전북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그 자리에서 애니 위원장은 자신이 워싱턴DC에서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연방하원에서 ‘일본군강제위안부결의안’을 채택한 일이라고 했다. 한승수총리 주최 만찬장에선 “워싱턴에서 일본의 방해를 제치고 인권문제로 강제위안부결의안을 통과 시킨 것은 미국 내 한인들이다”라고 했다. 

 

결의안 통과 이후로 필자는 시도 때도 없이 애니 위원장을 뉴욕으로 모셨다. 2011년 가을엔 뉴욕한인청과협회 주최 ‘추석맞이 대잔치’로 안내하기도 했었다. 애니 위원장이 워싱턴DC를 방문하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에게 꼭 물어 보는 말은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보았는가?”다. 웬만한 의원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무턱대고 미국의 대북정책을 물어오는 의원들에게 “한국의원들은 왜? 한국의 정책을 강조하고 주장하질 않고 먼저 자꾸 미국의 정책을 물어 보는가?” 핀잔 섞인 말을 습관처럼 한다. 

 

워싱턴DC에서 마지막 해인 2014년 초엔 필자를 불러서 초콜렛 한 박스를 포장해서 한국의 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 선물로 보내달라고 해서 전달하기도 했다. 아마도 애니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 할머니들이 정말로 아쉽고 섭섭한 눈물을 흘릴 것이다. 

 

애니 위원장의 워싱턴DC 의정생활 마지막 날엔 의사당에서 직접 ‘미주한인들의 풀뿌리활동을 고무하는 특별성명’을 발표해서 의회 기록에 영구적으로 남기기도 했다(2014년 11월18일) 

 

▲ 애니 위원장의 워싱턴DC 의정생활 마지막 날엔 의사당에서 직접 ‘미주한인들의 풀뿌리활동을 고무하는 특별성명’을 발표해서 의회 기록에 영구적으로 남기기도 했다(2014년 11월18일)     © 뉴욕일보

 

 

◆ 한국 정부의 태도 

23일 하원 외교위원회의 엘리옷 엥겔(Eliot Engel : 민·뉴욕브롱스지역구) 간사는 특별 조의 성명서를 냈다.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가장 성실했던 하원의원이 돌아가셨다는 성명서다. 

 

애니 의원의 장례식은 3월10일 경에 유타주에서 치를 예정이다. 그도 이제는 전직이지만, 필자는 마이크 혼다 의원을 모시고 그분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러 가려고 한다. 그는 필자가 가장 가깝게 모셨던 미국 연방 정치인이다. 성경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아주 신실한 신앙인이다. 

 

필자의 가정사를 듣고서 늘 함께 기도해 주신 분, 클린턴에서 부시로 백악관의 주인이 바뀔 때에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관계회복에 노력하여) 한미관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분이다. 그래선지 그분의 투병 중에 어떤 병문안의 말도 전해오지 않은 한국정부에 정말로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애니 팔레오마바에가 위원장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며 그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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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25 [00:00]  최종편집: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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