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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에게 한 마지막 말은…
 
뉴욕일보 취재부 기사입력  2012/10/26 [00:57]
“…우리의 적은 왜놈뿐이니
오늘 이 일을 실행함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신중히 해야 할 것이고
결코 왜놈 이외의 각국 인사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하라…”



 
▲ 1932년 4월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일본군 전승 축하행사에서 폭탄투척 거사를 논의 한 후 태극기 앞에서 기념촬영한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이 사진은 1932년 4월26일에 찍은 것이다.     © 뉴욕일보 취재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일본군 전승 축하 행사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1908-1932) 의사의 의거는 침체에 빠져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기사회생시켰다.
"중국의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며 의거에 크게 감동한 중국의 장제스(장개석) 총통은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으며 이 같은 지원에 힘입어 1945년 일제 패망 때까지 임시정부 후반기 투쟁이 계속될 수 있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인 김희곤 안동대 교수는 당시 "독립운동이 침체하고 어려울수록 윤봉길을 역사의 무대로 모셔와 그를 통해 새로운 활력소를 받아들이려는 의식이 강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진영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윤 의사의 의거를 기렸다. 김 교수는 '윤봉길 의사 현양(顯揚) 자료를 통해 본 상해의거의 역사적 의미'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에서 광복 이전의 자료를 중심으로 윤 의사의 의거를 기린 현양 자료들을 분석했다.
김구 선생은 거사가 일어난 뒤 열흘 남짓이 지나서 한인애국단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를 작성한 곳은 거사 직후 몸을 피하고 있던 미국인 피치 목사의 집이었고 성명서 분량은 5장 정도였다.
김구 선생은 엄항섭에게 문안을 쓰게 하고, 피치 목사의 부인이 이를 다시 영문으로 번역한 뒤 현지 중국 신문사와 로이터 통신에 보냈다. 성명서는 그해 5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상하이 현지 영자 신문과 중국 신문 등에 실렸다.
김 교수는 성명서는 "거사의 내용과 윤봉길이란 인물, 그리고 거사의 전말을 처음 제대로 세상에 선언하는 것이었다"면서 "그 뒤로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발행한 많은 논찬과 전기류들이 이를 기본으로 삼아 작성됐다"고 말했다.
성명서에 이어 윤봉길 의사의 순국 18일을 앞둔 1932년 12월 1일 발간된 김구 선생의 '도왜실기'(屠倭實記)에도 윤 의사의 의거 내용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특히 김구 선생이 윤 의사에게 마지막으로 한 당부 내용이 눈길을 끈다.
"최후로 군(윤봉길)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적은 왜놈뿐이니 오늘 이 일을 실행함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신중히 해야 할 것이고 결코 왜놈 이외의 각국 인사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폭탄투척 의거를 보도한 같은 해 5월 1일자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범인윤봉길 현장에서 체포'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범인’이라는 말이 합당한가를 두고 오래동안 비판이 일었다.     © 뉴욕일보 취재부
김 교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침략 책임자만을 족집게처럼 집어 공격하고 처단하라는 주문"이라면서 "한국 독립운동사에 나타난 의열투쟁이 이런 점에서 흔히 말하는 테러와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조소앙 선생은 저서 '유방집'(遺芳集) 에 수록된 '윤봉길전(傳)'에서 의거 당시 홍커우공원에 있었던 일본인과 일본군 부대의 규모를 자세하게 묘사했다.
"상해의 일본 교포와 육해군 합하여 1만4천여명이 홍구(훙커우)공원에 모여 전승축하와 경축대회를 거행하려 하였다. 아침 9시 白川 사령(일본군 시라가와 대장)에게 검열받을 제9사단, 해군육전대 합계 1만2천여 명이 있었다. 그중 기관총부대·기병대·보병대·야전포대·탱크부대·장갑차부대·수송부대·중포대·고사포대·치중대 등이 6천여명이 있었다. 그리고 해군장갑차 1隊(대) 8輛(량), 오토바이부대, 구호대 등 3천여명이 있었다. 아울러 헌병대 1천여명이 연이어 입장하였다."
윤 의사의 의거를 찬양하는 일에는 좌우가 없었다.
1932년 7월 상하이에서 발간된 '콤무니스트' 6호에는 '상해폭탄사건은 무엇을 말하느냐?'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윤 의사의 의거가 일본 통치에 대한 조선 근로대중의 증오를 반영한 것이므로 '살인행위'가 아니며 "참으로 통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우'(爾友)라는 필명으로 글이 게재됐는데 이는 이 무렵 상하이에서 맹렬하게 활동을 펴던 김단야(金丹冶)로 알려진다"고 소개했다. 김단야는 상하이에서 활약했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다.
김 교수는 이 밖에 김광이 1933년 또는 1934년 펴낸 윤봉길 의사 최초 평전인 '윤봉길전', 미주 동포사회의 윤 의사 현양 자료, 윤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의거 등을 찬미한 헌시 '의사행'(義士行)을 지은 중국인 문필가 징메이주(景梅九) 등을 소개했다.
징메이주는 '의사행'에서 "중국 남아(男兒) 의사만 못해 부끄러워하고, 일세의 호걸도 머리를 숙였네"라고 윤 의사를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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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26 [00:57]  최종편집: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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