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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계” 앤디 김 후보가 연방상원의원이 꼭 돼야하나?

“우리 후세들이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하게 미국서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뉴욕일보 | 기사입력 2024/03/2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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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계” 앤디 김 후보가 연방상원의원이 꼭 돼야하나?
“우리 후세들이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하게 미국서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뉴욕일보   기사입력  2024/03/29 [05:06]

  © 뉴욕일보

박동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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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김 후보 부부와 두 아들. 앤디 김 후보는 “후발 이민자들의 후세들이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하게 미국서 살 수 있는 미국을 만들기 위해 정계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 59년 전 셀마-  몽고메리 투표권 행진

지금부터 59년 전인 1965년 3월 25일은 미국내 유색인종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저 유명한 ‘셀마-몽고메리 행진’의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 한인 이민자들이 이 날을 잊으면 안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민을 오게 된 것 그리고 우리가 투표 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 ‘셀마- 고메리 행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내 이민자들의 역사는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1964년에 민권법이 통과됐고 1965년에 투표권법이 통과됐으며 그 직접적인 결과로 같은 해에 평등한 ‘이민법’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셀마-몽고메리 행진은 3차에 걸처 진행됐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1차 행진은 1965년 3월 7일, 지금은 고인이 된 존 루이스 당시 ‘비폭력학생협의회’ 대표의 인도로 진행됐다. 그러나 경찰들의 최루탄과 곤봉을 사용한 무력 진압에 의해 참가자 대부분이 부상을 입었고 그 중 한 명이 사망했다. 

이날 현장의 영상은 전 세계에 타전됐고 큰 충격을 주었다. 방송을 본 머틴 루서 킹 목사 등 목회자들과 시민들은 셀마 현장으로 집결하여 3월 9일 2차 행진을 시도했으나 시위대 보다 많은 경찰들과 대치하다가 결국 회군했다. 

마침내 3월 21일에서 25일까지 4박5일 간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2만5천 명의 행진대가 45마일의 80번 고속도로에 지워지지 않는 투표권 운동의 발걸음을 새겼다.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생겼고 벽을 여니 문이 되었고 벽을 밀치니 다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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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3월 25일 ‘셀마-몽고메리 행진’의 3번째 시도. 4박5일 간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2만5천 명의 행진대가 45마일의 80번 고속도로에 지워지지 않는 투표권 운동의 발걸음을 새겼다.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생겼고 벽을 여니 문이 되었고 벽을 밀치니 다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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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3월25일 ‘셀마-몽고메리 행진’의 마지막 날 몽고메리 시청 앞에 모인 2만5천 명의 군중들 앞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또 한 번의 명연설을 했다. 역사가들은 이 연설의 제목을 “우리 주님이 행진하신다(Our God is Marching On!)” 또는 “얼마나 더? 얼마 남지 않았다!(How Long? Not Long!)”라고 명명했다.

 

◆ 행진 마지막 날- 킹 목사의 명연설

1965년 3월25일 행진의 마지막 날 몽고메리 시청 앞에 모인 2만5천 명의 군중들 앞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또 한 번의 명연설을 했다. 역사가들은 이 연설의 제목을 “우리 주님이 행진하신다(Our God is Marching On!)” 또는 “얼마나 더? 얼마 남지 않았다!(How Long? Not Long!)”라고 명명했다.

가장 먼저 킹 목사님은 이날 투표권을 향한 비폭력 평화 행진을 결코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는 계속 행진 할 것입니다. 어떤 인종 차별도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불타도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행진 할 것입니다. 강력한 군대조차도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땅으로 행진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향한 우리의 승리의 행진을 계속합시다! “ 

아울러 킹 목사님은 이 아메리칸 드림이 흑인들 만의 꿈이 아니라 미국 내의 모든 사람들이 모든 차별과 억압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게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모든 게토와 모든 사회-경제적 불황이 사라지고 모든 인종의 사람들이 품위 있고 안전하며 위생적인 주택에서 나란히 살 때까지 행진합시다. 자녀를 먹이기 위해 끼니를 거르는 부모가 없을 때까지, 존재하지도 않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와 마을의 거리를 걷는 굶주린 사람이 없을 때까지 행진 합시다.”

그리고 “투표권 쟁취”와 “우리를 대변할 의원들을 의회에 보내기 위해 행진하자”고 역설했다.

“미국 정치에서 인종 차별이 사라질 때까지 투표권을 향해 행진 합시다. 가혹한 인종주의자들이 침묵 속에서 떨고 있을 때까지 투표권을 향해 행진합시다. 시 의회, 주 의회, 그리고 연방 의회에 공의를 행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며 겸손히 주 하나님과 동행할 우리의 대표들을 보낼 때까지 투표권을 향해 행진 합시다.” 

그리고 킹 목사님은 투표권을 향한 평화적이며 비폭력적인 그러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싸움이 필요성을 역설하며 백인우월주의의 구조악을 무너트리는 선한 싸움을 ‘여리고성 전투 이야기’에 비유했다. 이어서 킹 목사님은 ‘우리 시대의 여호수아’ 들이라고 칭하며 정의와 민권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추모 했다. 메드거 에버스, 지난 여름 미시시피에서 타살된 세 명의 민권 운동가, 윌리엄 무어, 제임스 리브 목사, 지미 리 잭슨, 그리고 일요일 아침 버밍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죽은 네 명의 어린 소녀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계속 행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자유를 향한 위대한 발걸음으로 짐 크로우 장벽을 뚫고 걸어가는 그들의 발자국은 여호수아 부대의 행진하는 사람들의 천둥소리이며, 그들의 발자국 아래 세상은 흔들리고 있습니다.”라고 사자후를 토해내셨다.

 

  © 뉴욕일보

미움과 차별이 없는 미국 사회를 만들자고 역설하는 앤디 김 연방하원의원

◆ 한인 최초 연방상원의원 후보 앤디 김 의원

이렇듯 우리가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들의 투표권은 흑인들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이 피, 땀, 눈물을 바쳐 쟁취한 소중한 결과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금년의 미국 선거는 향후 미국과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우리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 한인 동포들 뿐만 아니라 미국 주류 사회가 주목하는 후보가 한 사람 있다. 최초의 한인 연방상원의원에 도전하는 앤디 김 현 연방하원의원이다. 

필자는 앤디 김 후보가 단지 한국계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지난 몇 년간 여러 모임과 행사에서 보고 연설을 듣고 대화를 나눈 결과 앤디 김 후보의 꿈이 우리 이민자들의 꿈 그리고 킹 목사님의 꿈과 닿아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앤디 김 의원은 필자가 만나 본 정치인들 중 가장 ‘공복(公僕, Public Servant)’이라는 말에 부합하는 의원이다. 얼마 전 필자는 그의 그룹 이메일을 받고 울었던 적이 있다. 정치인의 이메일을 받고 눈물 흘리기는 처음이었다. ‘미주 한인의 날'을 기념하며 자신이 받은 차별의 경험담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진솔하고 공감되는 글 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였다. 또한 차별의 경험이 있는 이민자들과 유색인종 모두의 이야기 였다. 

그가 국무성 국가 안보 전략가에서 연방 의회에 도전한 이유도 더 잘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이지만 백인 주류사회가 바라보는 정형화된 시선, 즉 '모범적 소수계(Model Minority)’와 '영원한 이방인(Perpetual Foreigner)‘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라온 이야기가 마음이 아프도록 짠했다.

 

◆ 앤디 김 의원의 차별 경험을 쓴 편지 

“부모님은 50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오셨고, 지구 서반구 전체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셨습니다. 저와 제 여동생은 이곳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우리가 악센트 없이 영어로 말하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부모님은 우리가 자신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이로 인해 항상 외국인으로 평가받는다는 불안감을 느끼셨지요. 

학교에서 저는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점심시간에 다른 음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놀림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방어적으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최소화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누가 저를 한국계 미국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부르면 그냥 미국인이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포드에서 박사 학위 취득 후 외교 업무를 담당하던 국무부에서 어느 날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 관련 이슈에 대한 업무가 금지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중동 전문가로서 한국 이슈를 다룰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죠. 국무부는 왜 저를 금지시켰을까요? 

기본적으로 저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일한다고 해서 미국에 100% 충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제 정체성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100% 미국인으로 보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굴욕감을 느꼈고, 제가 안보 위험인물로 간주된다면 외교 정책 분야에서 제 경력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몇 년 후 저는 의회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상대 당에서 "앤디 김, 그는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광고를 TV에 내보내기 시작했을 때,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느꼈습니다. 전문가들은 백인이 85%, 아시아계 미국인이 3%도 안 되는 이 선거구에서 제가 이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냈습니다.

저는 최근 아빠가 되었습니다. 두 명의 아름다운 한국계 미국인 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부모님을 대신해 가족 유산과 국적 사이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말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제 인종과 민족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제 커뮤니티를 대표할 권리가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한국계 미국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인의 이야기입니다.”

 

◆ 킹목사 꿈, 이민자들 꿈, 앤디 김 의원의 꿈

필자는 앤디 김 의원이 자신의 자녀들 이야기를 할 때 킹 목사님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는 연설의 이 부분이 생각났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 색깔 대신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게 되는 꿈 입니다.”는 구절 이다. 이 꿈은 킹 목사님의 꿈이자, 이민자들의 꿈이자, 앤디 김 의원의 꿈이라 굳게 믿는다. 

59년 전 킹 목사님께서 몽고메리 의회에서 명연설을 하던 오늘, 앤디 김 의원과 한인 동포들에게 기쁜 소식이 미 전역의 주요 언론에 보도됐다. 앤디 김 의원의 연방상원 도전의  민주당 내 유력 상대였던 태미 머피 주지사 부인이 후보를 전격 사퇴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로써 앤디 김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 예비선거까지 본 선거까지 7개월이 남아있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므로 방심은 금물이다. 

앤디 김 의원은 그동안 이민자 권익법안, 투표권 확대법안, 총기규제 법안과 한반도 평화법안 등을 위한 발의와 표결로 한인 동포 유권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제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미국 정치의 부패를 척결할 선한 싸움을 해나갈 더 큰 정치인이자 진정한 공복(public servant)으로서 앤디 김 연방 상원 후보를 더욱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해야 할 것이다. 

앤디 김 후보는 킹 목사님이 몽고메리 행진 연설 때 말씀하셨던 ‘공의를 행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며 겸손히 주 하나님과 동행할’ 그런 의원이 될 것 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6월 4일 민주당 예비선거와 11월 5일 본 선거에서 앤디 김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하도록 우리 한인 유권자들이 주위의 유권자 최소한 10분과 함께 꼭 투표해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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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3/29 [05:06]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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