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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정부는 아직 북한에 억류돼 있는 6·25 국군포로 귀환 최선 다하라”
북한에 포로로 잡혔다 53년만에 탈출한 이종혁 옹, 미국 방문…피맺힌 절규
 
뉴욕일보   기사입력  2022/06/11 [00:41]

  © 뉴욕일보

8일 퀸즈 플러싱 산수갑산2 당에서 탈북 국군포로 이종혁 옹(앞줄 왼쪽 8번째)이 국제탈북민인권연대와 6·25 국군포로유족회와 함께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뉴욕 일대 625 전우회 회원들이 많이 동참했다.

 

“한국정부와 미국정부는 6·25 한국전쟁 중 북한에 포로로 잡혀 정전협정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군군포로의 귀환을 위해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한국전쟁 때 국군으로 전투에 참전했다 북한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 북한에 끌려갔다 50여년만인 2006년 탈북하여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종혁 옹(92)이 뉴욕을 방문, 8일 퀸즈 플러싱에 있는 산수갑산2식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한미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혁 옹은 국제탈북민인권연대(대표 마영애)와 북한인권인원회(사무총장 그렉 스칼라튜)의 초청을 받고, 북으로 끌려간 한국전쟁 국군포로들의 실상을 알리고 그들의 귀환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지난 5월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이종혁 옹은 미국에서 미국정부와 유엔 관계자 등을 만나 아직까지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국군포로의 실상을 증언하고, 조속한 귀환을 위한 노력을 해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이 옹은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국군포로들은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회담 직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남한으로 돌아간 것은 풍산개 2마리였다. 당시 국군포로들은 조국을 위해 싸운 우리가 개만도 못하냐!는 울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종혁 옹은 2006년 자력으로 북한을 탈출하여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 옹은 “지난 봄 한국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유일하게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제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기대가 크다. 이번 미국 방문길에 미국 정부와 정치인들게 한국전쟁 국군포로들의 실상을 알리고, 귀환의 물꼬가 터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 옹은 9일 워싱턴DC에 있는 북한인권위원회(사무총장 그레그 스칼라튜)를 방문, 국군포로들에 대해 증언한다. 이 옹을 초청한 국제탈북인권연대 마영애 대표는 “이날 회의에는 국방부와 국무부, 유엔 관계자 6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초 지난 5월 8일 유엔서 증언할 계획이었으나 우크라 사태 등의 여파로 연기됐다. 

 

경상남도 울주군 출신인 이종혁 옹은 카투사(KATUSA)에 배속돼 1950년 8월15일 미 24단 21연대 1대대 C중대 보병 소총수로 낙동강 전투 등에 참전했다. 한국 최초 카투사 313명중 1명으로 24사단 일본 철수로 1951년 3월 국군 육군본부 직할 전차(탱크) 부대에 배속, 전차장(일등 중사)으로 다시 전투에 참전했다.

하지만 휴전 13일을 앞둔 1953년 7월 14일 수도사단(맹호부대)에 배속, 강원도에서 전투를 벌이다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혀 북으로 끌려갔다. 이옹은 당시 상황을 “전투 중이었는데, 근처에 수류탄이 떨어지더니 쾅 터졌다.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이미 포로로 잡혀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생생히 설명했다.

 

이 옹은 이후 함경북도 경원군 하면탄광에서 35년간 광부로 중노동을 했다. 당시 국군포로가 800여명에 달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35년간 광부로 강제 노역을 하며 당한 가혹행위, 학대, 인권 유린 등에 대해 아직도 치가 떨린다”고 분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손명화 6·25국군포로유족회 회장은 “한국 정부가 국군포로와 유가족에게 너무나 무관심하다.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은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올해 5월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 최초로 탈북 국군포로를 초청했던 만큼, 한국 정부가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한국전쟁 정전 당시 8만여 명의 국군포로가 실종됐는데, 이 중 5~7만 명 정도가 북한군에 의해 포로로 억류돼 귀환하지 못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상 결과 교환된 국군포로는 8343명 뿐이다. 

 

국군포로 중 ‘탈북’해 한국으로 돌아온 노병은 80여 명이며, 정식으로 ‘송환’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는 1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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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6/11 [00:41]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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