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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의 선구자 백철극화백 유작 세상에 선보이다.
 
뉴욕일보   기사입력  2021/07/14 [07:49]

 한국 초창기 서양화의 선구자인 백철극 화백의 작품이 미국 4대 빅쇼 중 하나인 LA Art Show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당초 지난 2월 열릴 예정이던 LA아트쇼는 코로나19로 인해 오는 7 29일부터 8 1일까지 미국 LA에서 열릴 예정으로, 주최 측이 놀랄 정도로 입장권 예매 열기가 뜨거워 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 소나기                                                                                                © 뉴욕일보




 올해 LA아트쇼는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융합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던 컨템포러리(Modern Contemporary) 아트의 모든 장르를 망라하며 최대 규모로 열릴 예정으로, 벌써부터 입장권 예매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미국 시장에 한국의 작가들을 소개하고 신진 작가 발굴에 힘쓰고 있는 J&J Art가 올해도 LA Art Show에 참여한다.

특히 J&J Art는 올해 한국 초창기 서양화의 선구자인 백철극 화백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J&J ART의 전속 작가인 백철극 화백의 작품 홍보를 위해 다양한 기획을 준비 중으로, 이번 LA Art Show는 추상미술 1세대로 미국에서 활동하다 타계한 백철극 화백의 유작들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한다.

"백철극 화백의 특별 단독부스는 주최측에서 그의 작품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여 선정된 것으로 백철극 작가의 동서양을 융화한 예술이 단독으로 선보이게된다."

아울러 이번 전시를 통해 미국 전역에 그의 작품 소장자들이 나타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공개해주길 유족들이 바라고있다.

 이어 “LA에서 활동 중인 유명 작가들을 영입해 이번 LA ART SH0W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라며내년에는 캐나다와 뉴욕, 유럽 등지에서 한국의 작가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경을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철극 화백(白鐵克, 백간노미 1912~2007)은 한국 초창기 서양화 선구자의 한사람으로, 1세대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남관 등의 작가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1912년 평안북도 박천 태생으로 4세에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의 바느질로 어려운 생활 가운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평양의 대동강 극장 간판 조수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영화간판 화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몇 년간 모은 학비로 도쿄의 니혼대 미술과에 1934년 입학해 같은 과 동창이며 친구인 김환기 씨와 당시 일본 현대미술의 대가 후지다 쓰구하루와 세이지 도고 등에게 사사하고 1937에 졸업했다.

 

▲ 침략자                                                                           © 뉴욕일보


 이후 도쿄 홍고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생활을 마치고 상하이로 건너가 28세에홍커우 북 사천로거리 풍경을 거침없는 인상파 기법으로 그려내 1940년 상해 당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일본 미술가협회전 공모에 응시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대상을 수상한다. 내란으로 인한 어려운 상하이 시절에 10여 년간 그린 작품으로 아직까지 남겨진 것은 수상작 외에 스케치와 유성 파스텔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1949년 고국으로 귀환한 삶은 곧 한국전으로 이어져 고난의 연속 속에 살아가야 했다. 생계를 위해 미군 장교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한번은 위문공연 차 방한한 미국의 유명 코메디언 밥 호프(Bob Hope)가 갓을 쓰고 한복에 담뱃대를 문 모습을 그려주길 주문했다고 전한다. 1960년대 들어서 생계를 위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피에 몬드리안(Piet Mondrian),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같은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추상적 작품세계의 붓을 놓지 않았다. 이 시기부터 그는백철극이라는 본명 대신 어머니가 이북 사투리로 정감있는 목소리로 부르던간놈이’(갓 태어난 아이를 뜻함)를 호로 사용해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 비                                                                                                     © 뉴욕일보



 백 화백은 1967 3 2녀를 거느리고 캐나다로 이민 길에 오른다. 몬트리올과 뉴욕 그리고 LA 등지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1970년 뉴욕 자신의 개인전에 오랜만에 절친인 김환기 화백과의 재회를 계기로 그의 작고 1974년까지 작품세계를 공유한다. 미국에서도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역사 깊은 ‘Foster & Kleiser’라는 대형 옥외 상업미술 전문회사에서 일하며 꾸준히 자신의 추상세계에 깊이를 더해갔다.

▲ 비행기                                                                                                © 뉴욕일보


 백철극 화백의 전성기인 70년과 80년대에 걸쳐 생전에 그토록 그리던 파리에서의 작품세계가 시작됐다. 파리에서 1980년 뱅센시 살롱 오피셜 전시에서 시장상을가을예수상작품으로 수상하고, 다음해 가을 1981년에는 살롱 도톤느 전에서센느강 풍경으로 단독실 전시 영광을 누리며도돈느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백철극 화백은 LA에서 2004년 그의 마지막 전시에 당시 LACMA 디렉터 Mr. Fox를 초빙해 높은 평가를 받으며 작품 중 ‘Battle’을 선정해 수집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백은 3년 후인 2007년 지병으로 95세의 삶을 마감했다. 그 후 차남 백중필 박사에 의한 국내 소개로 2009년 그의 대표작 중침략자비행기가 국립현대 미술관에 소장됐다.

 한편 J&J ART LA아트쇼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J&J ART 홈페이지(www.jjartinc.com)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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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7/14 [07:49]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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