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탄핵정국이 지겹다. 남의 일로 생각되기 때문에서가 아니다.
충격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한, 두 가지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리더십의 시작부터 끝이 몽땅 그렇다.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 끊임없이 드러나기에 그렇다.
처음에는 안타깝게 손발이 저릴 정도로 숨죽이면서 바라다 봤지만, 알고 보니 철저하게 속은 거다. 그야말로 몽땅 속았다.
◆ 기대와 실망감의 이중주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서 직접 봐 왔던 그녀의 면모는 가짜였다. 한국의 그 많은 야권 인사들로부터 “정신 차려라”, “속고 있는 거다”란 빈정거림 말투가 지금 필자의 귓가에 윙윙 거린다.
철저하게 속은 거다.
그녀의 반복된 말이 ‘애국심’과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다. 그래서 지금 필자는 말 그대로 배신감이다.
2013년 미국의 흑인대통령과 한국의 여성대통령이 만나는 장면을 가까이서 바라다 볼 때엔 대한민국 출신의 이민자란 것이 가슴 울컥 감동적이었다.
연방 상·하 양원합동회의에 연설자로 등장할 때엔 미국 의원들 앞에서 필자는 정말로 우쭐했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무릎 가까이로 의자를 당겨 앉아 대화하는 백악관 한미정상회담 장면이 TV로 비쳐질 때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럴 때를 위해서 10월유신과 긴급조치를 견뎌야 했던 거구나!”라고….
여성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낸 21세기 초엽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포풀리즘의 포로가 된 포스트모던을 극복할 지구촌 희망이라고 확신했었다. 솔직히 페미니즘이란 이해가 아니었다. 분단국가 출신의 두터운 민족주의가 그녀에 대해서는 관대하도록 했다. 그리고 필자는 경솔하게 감상적으로 받아들였다.
◆ 뒤처져 있는 한인사회
적어도 10년 전에 분단을 뛰어 넘었어야 하는데 우린 그것을 못했다.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새롭게 짜여지는 국제사회의 틀을 궁리하지도 못하고 우린 우리끼리의 피 튀기는 이념논쟁으로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그래도 아둥바둥 희망을 찾으려는 억지의 희망과 가엾은 노력을 하지만 분단현실에서 이념논쟁을 극복할 방도는 그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이념적 편견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지적 분별력에 앞선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란 말이 이념적으로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그건 틀린 말이다. 아니, 틀렸다고 소리 높여서 외치지 않으면 적으로 규정된다.
우리 동네(한인동포사회)의 이러한 현상은 이념이 성경도 눌러 이겼다. 생각이 다른 형제도, 이방인도 관용과 사랑으로 위하고 대접하란 성경을 손에 들고 촛불이다 태극기다란 말다툼으로 거의 주먹질에 가깝게 쌈질이다.
교회의 안팎에서 필자가 경험한 일이다.
◆ 美서 바라보는 한국현실
중국을 억제하고 포위하는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국정책에 대응하는 일이 거의 전부인 한국의 외교가 올 스톱이다. 그것도 미국의 권력교체기에 그렇다.
군사력(NSC)에 경제력(NTC)을 더해서 강경하게 공격하는 트럼프의 전략에 관심을 갖는 이가 있을 리 없다. 있어도 보일리 만무다.
현재 한국에서는 현직대통령의 탄핵과 새 대통령을 예상하는 것 말고는 아예 뉴스가 없다.
‘북한의 핵’이 현실이고 우리가 당사자임에도 미국의 동의하에 일본이 그것을 주도하도록 새판이 짜여진 것에 긴장하는 이 없다.
워싱턴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현실은 서울서의 그것 보다 훨씬 심각하다. 집안일은 참아내면 된다고 쳐도 국제사회의 논리는 돌이킬 수 없기에 해외동포의 가슴이 더 찢어진다.
한국은 리더십의 부재로 국가의 위기다. ‘위기는 오히려 기회다’란 그런 위기가 아니다. 분열이 치유되지 않아서 생긴 결집의 문제가 그 해결의 앞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미국의 이민자들
사람은 현실이 기본이다. 미주한인은 우선 미국의 시민이다. 뉴욕의 한글매체(방송이나 신문)의 앞면의 대문짝만한 글씨가 아무리 탄핵이라 해도 관심의 영역이지 행위를 규정하지는 못한다.(서울로 뛰어가고 뉴욕 한복판에서 목청을 돋구고 있긴 하지만…). 우리 재매한인들은 애국심이 펄펄 끓어서 24시간 태극기다 촛불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미국의 실정법 하에 있다.
사실이지 면밀하게 살펴보면 서울의 탄핵정국이나 트럼프의 정책적 반역(반역사적)이나 같은 질의 규탄대상이다.
오히려 (이민자의 눈으로는)워싱턴이 더 심각하다. 그러니 동포들이여!!! 이제는 관심을 현재 우리가 발딛고 살고 있는 이 땅-미국으로 돌리자.
광화문 앞 광장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면 거긴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태극기를 휘젓고 촛불을 흔들고 열 받아서 흥분해서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는 사람도 거기에 너무 많다.
미주동포까지 보태지 않더라도 차고 넘친다. 우리 이제 ‘우리 재미한인은 소수계 이민자’라는 냉혹한 현실로 냉정하게 돌아오자.